늙으나 젊으나 행복하게 살고자하는 것이 인간의 공통된 욕망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사는 형편이 다르다보니 천태만상 천태만별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마주침이다. 중국 진나라 시황제는 불로장수를 바라서 서복(서시)이라는 신하 방사(方士)를 시켜서 늙지 않는 불로초(不老草)를 구해 오도록 했다. 많은 인원과 경비를 주었으나 서복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또한 몽골제국을 세운 칭기즈칸은 세계를 정복하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권력을 누렸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는 서정(西征)길에 있는 전장에서 칼을 차고 무수한 목숨을 죽이고 도시를 파괴하는 폭군이었지만, 마음 한 쪽에서는 무엇인가 공허함을 느꼈다. 칭기즈칸이 듣자하니 불교의 고승 해운 선사가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만나 봤으나 크게 감동을 받지 못했다. 세계를 정복하면서 영토가 넓어지는 것과 비례하여 마음속에서는 허무한 생각이 더 커져만 갔다. 그는 누군가 정신적 지도자를 만나서 뭔가 신출한 메시지를 들어야만 했다. 수소문하니 당시 도교의 일파인 전진교의 수장 도사 장춘자(長春子)라는 신선이 있음을 듣고 당장 만남을 명했다. 장춘자는 본명이 구처기
추석 명절이 다가온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이동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코로나 19 임에도 많은 국민이 고향을 찾아갈 것이다. 민족의 대이동으로도 표현되는 명절 풍속도이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포근한 사랑을 안겨준다. 나이든 분들은 대부분이 어린 시절을 시골 고향에서 보냈기 때문에 고향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지난 반세기를 더듬어본다면 대도시를 고향으로 두고 있는 국민도 상당수이겠으나, 그래도 시골 출신 국민이 많을 것이다. 비단 시골이 아니더라도 지방도시나 시군 읍면 할 것 없이 지방 출신들은 추석이나 설 명절에는 고향을 찾아가고 싶어 한다. 사정이 있어서 고향에 가지 못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누구나 가고 싶은 곳이 고향이 아닐까. 이것저것 선물 보따리를 들고 찾아가던 고향 생각이 절로 난다. 나훈아의 ‘고향역’은 그래서 더 정겹게 느껴진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곱쁜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안고 눈 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코스모스 반겨주는 정든 고향역 다정히 손잡고 고갯마루 넘어서 갈때~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 안고 바라보았네 멀어진 나의 고향역~ 이런 노래 가사 속에서 우리는 우
한가위 추석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고향에 계시는 노부모들은 언제나 자식들이 오나 하고 기다려지게 된다. 금지옥엽 같은 자식들을 밖으로 내보내 놓고 걱정만 하던 부모들은 자식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고향 집을 찾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이 왁자지껄 들이닥쳐도 즐겁기만 한 것이 부모 심정이다. 누구나 어릴 때의 추석명절은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야 추석 명절이라고 해봐야 공휴일 이상의 개념이 아니겠지만, 적어도 ‘70년대 이전 까지는 누구나 고향을 찾아가서 정답고 그리운 부모형제들을 만나서 오순도순 피붙이의 정을 나누는 것이 추석명절의 우리네 풍습이었다. 추석을 한가위라고도 한다. 우리 민족의 명절 가운데 설날과 더불어 최고의 명절로 여겨왔다. 추석은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였던 시기에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연중 최대 명절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 하는데, 추석의 다른 이름만으로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가배일(嘉俳日), 한가위, 팔 월 대보름 등이 있다. 가을 추수를 끝내기 전에 덜 익은 쌀로 만든 별미 송편과 햇과일을 진설하고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는데, 옛날 같으면 일가친척이 고향에 모여 함께 차례를 지
세상 사람들에게 죽음은 엄청난 사건이다. 한 인간이 생을 마감하는 것은 그에게는 종말이요, 가족이나 친지들에게는 공간상의 존재가 사라져 버리는 인간관계의 절망이다. 탄생과 죽음은 인간의 속성으로서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대사건이다. 그렇지만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은 죽음을 슬퍼한다. 감정을 지닌 동물이기에 이런 느낌을 갖고 삶과 죽음을 받아들인다. 혹시라도 불행하게 요절을 한다든지 병으로 죽게 되는 경우에도 슬픔은 마찬가지이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병사는 죽음을 전제로 한 대결을 펼치면서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각오로 피투성이가 되면서 까지 사투를 벌이게 된다. 어떤 형태의 죽음이라도 이를 즐겁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인간은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복수심이나 어떤 목적을 갖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간이 있다면, 인간으로서는 너무나 잔인한 마음을 가진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낯이 두꺼운 짐승 같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백수를 누리면서 비교적 안락한 삶을 누렸다고 할지라도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비탄이다. 그런가하면 죽음을 받
어제 저녁에 사관학교 시절 친구가 모친상을 당했다고 해서 분당에 있는 병원의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모친이 향년 95세이어서 호상이라며 음료수만 마시고 일어서려다 형제가 몇인지 물어보고 부친은 언제 작고했느냐고 물으니 부친은 6.25 때 돌아가시고 친구는 유복자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의외로 사관학교 동기생들 중 부친이 없는 친구들이 많다. 그 사연을 물어보기가 어쭙잖아 그냥 넘겨왔는데 오늘 이 친구도 그 중에 하나였다. 사관학교 1학년 휴가 때 대구에 있는 동기생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친구도 홀로된 모친이었고 바로 위의 형은 사관학교 선배였다. 사관학교 동기생들은 거의가 6.25 전쟁 중에 태어났다. 그래서 아버지가 없다는 소리를 듣기가 싫어서인지 가족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았던 것 같다. 6.25전쟁은 우리민족에게 큰 상처를 주었지만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고 홀로된 여인은 더 큰 불행 속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더욱이 자녀들까지 있었다면 그 삶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렇게 공들여 키운 자식을 직업군인으로 만들어 나라에 바칠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나라 위해 희생한 남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맘이었을까? 우리나라 역사를 되돌아보면 끊일 새 없는 전쟁의 참화 속에
지난 한 해를 마감하면서 우리는 코로나사태를 극복하지 못한 채 우울한 신축년 설날을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사회거리두기시책으로 민생경제가 어려움이 가중되는 가운데에서도 또 한 해는 지나가고 흰 소의 해가 밝았다. 으례히 설날에는 그립고 보고 싶은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을 만나고 아이들은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만나는 희망과 기쁨도 아이들의 꿈도 사라지고 말았다 . 바깥출입을 자제하면서 이제는 집안에서 즐길 수 있는 TV시청이나 실내 게임과 운동을 하는 등 일상생활의 풍속도가 많이 바뀌어 지고 있다. 설날이 오면 어김없이 즐기는 민속놀이도 올해는 실외에서 여럿이 어울려 할 수 있는 놀이보다는 실내에서 가족끼리 할 수 있는 전통 민속놀이를 골라야 될 것 같다. 가족들이 즐기는 모습을 멀리 있는 부모님을 비롯한 친인척들과 영상을 주고받으며 집에서 설 기분을 만끽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설날 전통 민속놀이는 모두 농경문화와 연결되어 만들어졌고 설날과 대보름 등의 정월 한 달 동안 실내에서나 실외에서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놀이들이다. 설날은 한겨울에 있어 농사일을 오랫동안 쉬면서 맞는
신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뉴 시니어 가족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지난해는 코로나19의 해라고 할 만큼 나라 전체가 코로나의 도가니 속에 갇혀 꼼짝달싹 할 수 없는 한 해였습니다. 새해에는 코로나19의 서슬에서 벗어나는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뉴 시니어는 한 해 동안 뉴 시니어 가족 여러분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당초 의도했던 만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장과의 대담이나 문화현장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뉴 시니어들에게 지방의 생생한 소식을 전달하는 등 뉴스를 만드는데 동분서주했습니다. 그리고 불교계를 찾아 전통문화를 소개하여 우리의 뿌리를 알 수 있게도 하고 뉴 시니어들의 여행을 돕기 위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회수가 많지 않습니다만 칼럼을 실어 삶의 이야기와 지혜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뉴스를 생산하고 현장을 탐방하는 데는 많은 애로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충실한 기사를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나라에 평화가 존속할 때에야 비로소 경제나 문화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듯이 코로나 감염병사태는 전시상황과 같아 국가나 기업 그리고
우리 밥상에 빠질 수 없는 반찬을 하나 뽑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로 뽑을 김치. 그 김치의 유래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우리가 오늘날 먹고 있는 대표적인 김치의 주원료인 배추김치의 역사는 조선시대 고추가 들어온 이후로 기록되어있다. 그전까지는 여러 가지 채소를 소금에 절인 형태의, 백김치와 비슷한 김치를 주로 먹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빨간 배추김치의 정확한 유래를 찾기 힘들지만 역사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 보기로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 년 전, 어느 시골 마을에 배추와 고추 농사를 짓고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어느 해 하늘의 도움이신지 배추와 고추 농사가 대풍을 이루었지만, 부부는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배추야 절여 먹는다고 해도 조선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낯선 작물인 고추는 판매할 방법이 없었다. 많은 고추를 우선은 배추처럼 소금에 절여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많이 남았다. 부지런은 했지만 뾰족한 꾀가 없었던 남편은 시름에 잠겼고, 그 모습을 바라본 부인이 매콤한 고추를 말려 가루를 내면 오래 보관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그리고 덧붙여 그 가루를 배추에 고춧가루 양념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옛날 옛적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부인을 일찍 잃고, 아들 하나 키우는 재미로 살고있는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산속에서 바둑을 두는 두 노인을 보고 옆에서 훈수를 두었다. 훈수를 받아 이긴 노인이 농부 입에 붉은색 작은 알맹이를 넣어주는 바람에 그걸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 해가 저물어서야 마을로 내려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가 살던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낯선 사람들만 보였다. 그는 황당해서 그곳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그들 또한 고개를 젓더니, 자기들이 들은 옛날이야기 속에, 한 농부가 200년 전에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는데 몇십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단다. 그래서 그 아들은 마을을 떠났고, 그 후로도 그 사람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신선놀음에 세월 간 줄 모른다는 이야기가 바로 대추 먹다가 200년이 흘렀다는 전설로 전해 내려온 것이리라. 바둑을 두던 노인들은 신선이었고 그 신선이 준 대추를 먹는 바람에 세월 가는 줄 몰랐다는 농부의 이야기는 그만큼 대추가 사람 몸에 좋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나라 향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집대성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는 ‘열병을 앓은
동지는 24절기 중 22번째 절기에 해당된다. 동지는 음력 11월에 들어 있어서 음력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동지라고 불러오고 있다. 옛날의 태음력법(太陰曆法)에서는 입춘(立春)에서 시작하여 일 년을 24절기로 나누었는데, 11월에는 대설과 동지가 들어 있다. 1년 12개월에는 두 개의 절기가 안배되어 보름 간격으로 배치되는데, 이것은 단순하게 절기를 안배한 것이 아니고, 계절과 기후와 태양과 달의 운행과 연관된 지구촌의 변화를 나타내는 일종의 자연과학이다. 24절기는 기후(氣候)와 관련이 있는데, 1후(候)는 5일간을 말하고 1년을 72후(候)라고 한다. 그러므로 24절기라고 하면 입춘(立春) 우수(雨水) 경칩(驚蟄) 춘분(春分) 청명(淸明) 곡우(穀雨) 입하(立夏) 소만(小滿) 망종(芒種) 하지(夏至) 소서(小暑) 대서(大暑)입추(立秋)처서(處暑)백로(白露) 추분(秋分)한로(寒露) 상강(霜降) 입동(立冬) 소설(小雪)대설(大雪)동지(冬至)소한(小寒) 대한(大寒)이다. 이제 기나긴 코로나-19의 터널을 지나려면 아무래도 소한.대한은 지나야 할 것 같다. 올해 동지는 양력 12월 21일(음력 11월 7일) 오후 7시 1분에 들어 있다. 동지는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