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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숙 소설가 칼럼> 대추나무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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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부인을 일찍 잃고, 아들 하나 키우는 재미로 살고있는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산속에서 바둑을 두는 두 노인을 보고 옆에서 훈수를 두었다. 


훈수를 받아 이긴 노인이 농부 입에 붉은색 작은 알맹이를 넣어주는 바람에 그걸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 해가 저물어서야 마을로 내려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가 살던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낯선 사람들만 보였다. 그는 황당해서 그곳 사람들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그들 또한 고개를 젓더니, 자기들이 들은 옛날이야기 속에, 한 농부가 200년 전에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는데 몇십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단다. 그래서 그 아들은 마을을 떠났고, 그 후로도 그 사람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신선놀음에 세월 간 줄 모른다는 이야기가 바로 대추 먹다가 200년이 흘렀다는 전설로 전해 내려온 것이리라.


바둑을 두던 노인들은 신선이었고 그 신선이 준 대추를 먹는 바람에 세월 가는 줄 몰랐다는 농부의 이야기는 그만큼 대추가 사람 몸에 좋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나라 향토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집대성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는 ‘열병을 앓은 뒤 목구멍이 마르고 아플 때 대추 20알과 매실 10알을 꿀과 함께 짓찧어 살구만 하게 알약을 만들어 한 번에 한 알씩 먹으면 잘 낫는다’라는 처방이 있다. 또한 『동의보감』에는 ‘대추는 맛이 달고 독(毒)이 없으며 속을 편안하게 하고 오장(五臟)을 보호한다. 오래 먹으면 안색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늙지 않게 된다’는기록으로 노화방지 처방도 있다. 그리고 『다산방(茶山方)』에는 ‘몸이 쇠약한 사람이 대추를 진하게 달여 대추와 탕을 함께 먹으면 인삼을 먹은 것과 같다’고 했다. 그 외에도 대추는 따뜻한 성질이 있어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피부를 부드럽게 해주며 손발이 차가운 사람에게 좋다. 


대추는 씨도 버릴 것이 없다. 대추씨를 깨서 알맹이를 노란색이 될 때까지 볶은 탕을 ‘산조인(酸棗仁)’이라고 해서 신경안정제로도 쓰인다. 특히 산조인 탕을 오랫동안 복용하면 남성의 정력에도 좋다. 몸은 작지만 야무지고 단단해 빈틈이 없는 사람을 이를 때 ‘대추씨 같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다.


대추는 차로도 많이 마시는데 대추차는 불면증 개선, 스트레스 해소와 정서 안정, 면역력 증진, 항암, 간 건강, 해독 등의 작용을 하고, 이뇨 작용도 있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다만 열량이 높은 편이라 많이 복용하면 위장 내에 습하고 탁한 기운이 가로막아 배가 부르고 몸이 부을 수 있으므로 잘 체하는 사람이나 먹고 나면 잘 붓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무엇이든 과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는 말은 진리일 것이다.


대추나무 속에는 탄수화물이 질소보다 더 많을 때 열매가 튼실하고 더 많이 맺히고 맛도 좋다는 설 때문에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는 풍습이 있다. 어린 시절에 이웃집에서 대추나무를 양 갈래로 찢어 당기며 그 가족들이 웃음보를 터트렸던 기억이 대추를 먹을 때면 떠올라 혼자 웃을 때가 있다. 사람마다 그 사람의 기호식품에는 반드시 사연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을 때가 많다.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는 상당히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대추나무  줄기에 상처를 내야만 뿌리에서 올라가던 질소가 상처받은 줄기에서 더 이상 뻗어가질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멈칫거린다. 그 멈칫거리는 동안 잎에서 만들어진 탄수화물도 상처 입은 줄기에서 뿌리로 내려가지 못한다. 그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 상태로 꽃자리에 영양이 뭉치게 되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단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한 작용으로 나무에 상처를 입힌다. 유기적인 협동심을 발휘하도록 과감히 푸른 이파리들과 뿌리의 결탁을 강요하는 것이다. 나무를 찍어내야만 번식을 많이 할 수 있으니 대추나무는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야만 대추나무도 제구실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많은 열매를 생산할 수 있어야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쯤은 나무도 알고 있을 테니까.


대추꽃은 6월이 지날 쯤에야 핀다. 왜냐하면 꽃이 피면서 열매도 같이 맺기 때문에 다른 꽃들이 모두 핀 다음에 핀다. 그래서 대추나무 열매에 필요한 영양분을 “대추꽃”에 집중적으로 보내줄 수 있다. 그 때문에 꽃이 필 때 나뭇가지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제 몸이 찢어지는 줄기의 고통과 도끼에 찍혀 상처를 받고도참아내는 인내력을 알고 있으니 우리의 전통 의례에도 많이 쓰이는 게 아닐까 싶다.


특히 대추는 풍요와 다산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 혼례를 치루고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자리인 폐백 때에는 시어머님이 며느리가 될 새색시 치마 자락에 대추와 밤을 던져준다. 대추는 자손이고, 밤 세톨은 3정승을 의미한다니,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권력이 으뜸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대추는 건강과 식생활에 유익한 식품이기도 하지만 조상님을 모시는 제사상과 차례상에도 오르는 걸 보면 과실 중에 으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래서 대추에 얽힌 우리네 속담도 많다. ‘양반 대추 한 개가 아침 해장’, ‘대추씨를 물고 30리를 간다’, ‘대추 세 알이면 죽어 가던 사람도 살릴 수 있다’ 등으로 모두 대추에 들어있는 영양과 효능의 풍부함을 알게 해주는 뜻이다.


 이렇게 약용, 식용으로 유용하게 쓰이는 대추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주술적 의미로도 쓰이고 있어서 겨울철 대추의 효용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아, 한가지 더 벽조목(霹棗木)이라는 벼락 맞아 그을린 대추나무 도장이 있다. 벽조목(霹棗木)은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하여 그 물건을 소지하면 액운을 막아 준다고 한다. 도장집에 가보면 벽조목으로 만든 도장은 다른 재료에 비해 비싼 것을 알 수 있다. 


대추꽃의 꽃말은 처음만남이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12월 끝자락에서 우리는 새해를 기다린다. 2021년의 첫만남을 대추차로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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