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먹거리자 소울푸드(Soul food)다. 한국인의 라면 사랑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구호식품으로 시작해 보릿고개를 넘기고 ‘주식’으로 자리 잡은 라면은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라는 청춘남녀의 애정고백 유행어에 당당하게 오른 적도 있으며 유럽 관광객들 사이에서 산악열차를 2시간타고 전망대를 오르는 것은 컵라면을 먹기 위해서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히말라야 네팔 식당, 지구 최남단 칠레 도시 푼타 아레나스에서도 우리나라 라면을 만날 수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라면 때문에 화상을 입는 승객이 나오고 이른바 ‘라면 상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에도 휘말렸지만 뜨겁고 냄새가 심한 라면을 포기하지 못한다.
저비용항공사들(LCC)의 경우 컵라면을 유상으로 판매하고 있는데 기내 판매 품목 중 컵라면은 늘 인기 상위권에 위치하는 메뉴여서 판매를 중단할 경우 매출에 직격탄을 맞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구호식품’에서 ‘한류음식’으로 자리 잡은 라면의 민낯은 어떤 모습일까?
푸드투데이가 창간 14주년을 맞아 라면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나봤다. <편집자주>
'침체기' 벗어나 다시 2조원대 돌파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에 따르면 2014년 한국인 한 사람당 소비한 라면은 무려 72.4개로 부동의 1위였다.
이렇게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라면의 첫 시작은 국민소득 80달러였던 1963년 ‘삼양라면’이 10원에 출시되면서 부터다. 5원짜리 ‘꿀꿀이죽’을 대체해야 했던 구호식품이었다.
그 당시는 라면이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류식품이 될 거라고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시기 삼양식품이 일본에서 제조기술을 도입하면서 라면의 역사가 시작됐다.
닭고기 국물 맛으로 서민의 배고픔을 달래준 삼양라면은 86년까지 라면시장 점유율 1위였다. 후발주자 농심은 82년 경기 안성에 스프공장을 짓고 국물 맛 혁신에 주력했다. 87년 농심 ‘안성탕면’이 삼양라면을 제치면서 국내 라면의 새로운 강자로 올라섰다.
이후 라면은 한국인들의 기호음식을 넘어 주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 종류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또 라면을 생산하는 업체도 삼양라면, 농심을 비롯해 팔도, 오뚜기, PB상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까지 포함하면 그 수도 어마어마하다.
2011년도에는 ‘라면국물은 빨갛다’라는 공식을 깨고 하얀국물 라면이 히트를 쳤다.
공중파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이경규가 만든 꼬꼬면이 입소문이 나면서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판매고를 올렸다. 후발주자로 나선 나가사끼 짬뽕도 그 해 12월 판매량에서 부동의 1위 신라면을 제쳤다.
그러나 6개월 후 열풍은 점차 사그라졌다.
대표상품인 꼬꼬면 판매량은 2011년 12월 2300만 개에서 2012년 2월 1400만 개로 급감했다. '나가사키짬뽕'도 한때 월 2400만개 판매에서 지난달엔 월 2100만개로 줄었다.
하얀국물라면은 반짝인기였다는 평가를 받지만 신제품 개발을 촉진시켜 선택의 폭을 넓힌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고 경기불황의 여파로 성장세가 주춤한 가운데 라면시장이 침체기를 겪었다. 국내 라면시장 규모는 2012년 1조9800억 원에서 2013년 2조 원을 돌파했지만, 2014년 1억97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 감소했다.
각 라면업체는 저마다 불황을 돌파할 키워드를 개발했고 2015년 라면시장이 지난해 대비 1.6% 성장한 2조원(2조16억원 추정)을 기록했다.
이는 2013년 사상 최초로 2조원대를 돌파한 이후 1년 만에 재입성한 것이다.
고급화 전략, '프리미엄'제품으로 승부수
2013년도에 들어서자 라면업계에 ‘모디슈머’열풍이 불었다. ‘하얀국물’ 라면과 마찬가지로 공중파의 예능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한 출연자가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끓여 먹는 장면이 나오면서 퓨전 라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네티즌들은 서로 다른 종류의 라면을 같이 끓이는 레시피들이 개발하고 공유했으며 업계의 변방에 있던 라면들이 빛을 봤다.
매운맛이 강한 불닭볶음면과 삼양의 간짬뽕이나 농심의 짜파게티와 함께 조리했을 때 훨씬 맛이 있고 오뚜기의 스파게티와 치즈콕콕을 같이 조리하면 맛이 살아난다는 레시피들이 인기를 끌었다.
일정시간이 지나자 소비자들은 새로운 것을 원했고 이번에 라면업계가 던진 승부수는 ‘프리미엄’이었다.
라면의 프리미엄을 주도하고 나선 업체는 농심이다. 농심은 우육탕면을 시작으로 굵은 면발과 중화풍의 불맛을 강조한 프리미엄 짜장라면 ‘짜왕’을 선보였다. 짜왕은 출시 직후,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입소문으로 4월 출시 이후 한달 만에 매출 2위를 기록했으며 7개월간 브랜드 누적매출은 9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짜왕의 인기는 경쟁 업체들의 '진짜장', '이연복 팔도짜장면' 출시로 이어지면서 짜장라면 시장에 고급화를 부추겼다. 전체적으로 일반 짜장라면에 비해 2배정도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으며 재료나 면발의 굵기에서도 차별화를 두고 있다.
짜장라면으로 시작된 프리미엄라면의 인기가 짬뽕으로 옮겨지면서 가장 먼저 짬뽕라면을 출시한 오뚜기의 진짬뽕은 출시 두 달 만에 2000만개가 팔렸으며 농심의 맛짬뽕도 출시 한 달에 1000만개를 팔았다.
농심은 이들 중화풍 라면의 공통분모는 '굵은 면발'이라고 내다봤다.
농심 관계자는 “지난해 중화풍 라면의 인기가 올해도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면서 “단순히 프리미엄 라면이라기보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품, 품질에 있어서 차별화 된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짬뽕 라면의 인기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매운 국물인데다가 친숙한 중화요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심 '독주' 속 삼양·팔도 '절치부심'으로 경쟁 참여
2016년에도 신제품을 가장 먼저 내놓은 업체는 삼양이다. 삼양식품은 지난 2월 프리미엄 비비면 '갓비빔'을 출시하면서 비빔면 경쟁을 예고했다.
삼양식품 측은 '갓비빔'에 대해 "프리미엄 브랜드 이름에 걸맞게 건강한 고품질의 식재료 사용에 공을 들인 제품"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비빔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팔도는 우선 '팔도비빔면' 판매 10억개를 달성한 기념으로 가격은 그대로면서 양은 20% 늘린 제품을 1000만개 한정해 판매할 예정이며, 현 제품을 리뉴얼해 선보일 계획이다.
진짬뽕으로 최고의 수익을 창출한 오뚜기도 신제품에 고심하고 있다. 오뚜이가 출시한 진짬뽕으로 지난해 1월까지 60%대에 육박하던 농심의 라면 시장 점유율이 지난달 54%로 6%포인트 감소한 반면, 16~17%대에 머무르던 오뚜기는 진짬뽕을 앞세워 점유율을 24%까지 높인 바 있다.
시장 점유율 1위인 농심은 2016년 건면(乾麵)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농심 관계자는 “올해 굵은 면 트렌드의 성공적인 안착은 새로운 식감에 대한 수요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건면이 가지는 찰지고 쫄깃한 식감은 유탕면보다 낫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기 떄문에 농심 만이 가지고 있는 건면 제조시설인 녹산공장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소비자 입맛이 다양화 되면서 라면시장도 발전하고 있다”면서 “맛과 품질을 잘 갖춘 제품에 대해서 소비자들은 라면 이상의 가치를 느끼고 있으며 이런 제품에 대해서 가격의 구애를 받지 않고 구매를 하는 가치소비행태가 자리잡았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다양해진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라면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면서 “라면의 트렌드가 기존의 국물 전쟁에서 면발로 옮겨왔듯이 종전과 다른 새로운 아이템의 개발과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