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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검스님 칼럼> 늙어간다는 것과 젊게 산다는 것의 차이

늙으나 젊으나 행복하게 살고자하는 것이 인간의 공통된 욕망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사는 형편이 다르다보니 천태만상 천태만별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마주침이다.

 

중국 진나라 시황제는 불로장수를 바라서 서복(서시)이라는 신하 방사(方士)를 시켜서 늙지 않는 불로초(不老草)를 구해 오도록 했다. 많은 인원과 경비를 주었으나 서복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또한 몽골제국을 세운 칭기즈칸은 세계를 정복하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권력을 누렸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는 서정(西征)길에 있는 전장에서 칼을 차고 무수한 목숨을 죽이고 도시를 파괴하는 폭군이었지만, 마음 한 쪽에서는 무엇인가 공허함을 느꼈다.

 

칭기즈칸이 듣자하니 불교의 고승 해운 선사가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 만나 봤으나 크게 감동을 받지 못했다.

 

세계를 정복하면서 영토가 넓어지는 것과 비례하여 마음속에서는 허무한 생각이 더 커져만 갔다. 그는 누군가 정신적 지도자를 만나서 뭔가 신출한 메시지를 들어야만 했다. 수소문하니 당시 도교의 일파인 전진교의 수장 도사 장춘자(長春子)라는 신선이 있음을 듣고 당장 만남을 명했다. 장춘자는 본명이 구처기(丘處機 1148〜1227)로서 자는 통밀(通密)이며, 장춘자(長春子)는 전진교에서 받은 도호이며 장춘진인(長春眞人)은 그 존칭이다. 산둥 성 서하(棲霞) 출신이라고 한다.

 

1222년에 서아시아 원정 중이었던 칭기즈칸의 초청을 받아 고령에도 불구하고, 제자인 이지상 등과 함께 멀리 서역까지 여행을 하여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칭기즈칸을 만났다. 불로장수의 비결을 묻는 칭기즈칸에게 살생을 금하고 동물을 애호하고, 섭생을 권했다. 장춘자 자신은 철저한 채식주의자이였기에 육식을 하지 않고 뭔가 고상한 풍모로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칭기즈칸이 장춘자로부터 다소의 감명을 받아서 마음에 위안을 느꼈던 것만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제자 이지상이 정리한 《장춘진인서유기(長春眞人西遊記)》 및 《현풍경회록(玄風慶會錄)》은 그 서역 여행 때의 기록이고, 장춘진인 일행이 거쳐 간 당시의 몽골고원 및 중앙아시아에 대한 귀중한 자료로 현재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장춘은 서역에서 귀국 후 연경(북경)에 있는 장춘궁(천진관)에 살면서 폭넓게 대중의 신앙을 모으고, 칭기즈칸이 죽던 해에 생을 마쳤다.

 

이상의 스토리에서 알 수 있듯이 칭기즈칸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불로장생(不老長生)이었던 것 같다. 칭기즈칸이 60세가 넘어서 장춘자(長春子)를 전장에서 만나기를 원했던 것은 아마도 인생무상을 느끼고 뭔가 정신적인 공허를 메워보려는 인간적인 욕망이 아니었겠는가. 하지만, 도사인 장춘자도 칭기즈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위자연의 도리로서 무욕밖에 더 설명했겠는가.

 

누구나 늙어가지만 젊게 산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진 행복이 아니다. 스스로 욕심을 줄이고 다소 부족하지만 만족하며 사는 지혜를 배우자. 지금 우리나라는 온통 ‘화천대유’가 화제이다. 시시비비가 가려지겠지만, 결국 돈으로 귀착되는 일확천금에 대한 요지경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대권 주자들이 저마다 목청을 돋우고 있다. 이들이 진정으로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봉사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지혜 있는 철인정치가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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