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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검스님 칼럼>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다.

 

우주자연의 이법(理法) 앞에는 어떤 종교나 이념도 무색해진다.

 

계절의 변화 앞에서 누구의 조작이나 의지에 의해서 세상이 돌아간다고 한다면 설득력이 약하다.

 

중국 상고시대에 이미 24절후가 발견돼서 현재에까지 절기(節氣)의 법칙이 그대로 운행되고 있다. 오늘(2월 4일)은 음력으로 1월 4일이다. 24절후 가운데 입춘에 해당되는 날이다. 올해 입춘은 오전 5시 51분에 시작된다.

 

입춘은 문자 그대로 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심신이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모르긴 해도 며칠 전 부터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땅속에서는 이미 봄기운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입춘이 되면 동풍이 불고, 얼음이 풀리며, 동면하던 벌레들이 깨어난다고 하였다.

 

물론 입춘 절기가 중국의 화북 지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우리나라에서는 기상(氣象)이 다소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대체로 이때부터 봄기운이 도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북쪽 몽골 고원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매우 추울 때도 있다.

 

음력으로는 대개 정월이므로 새 해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이날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글을 써서 대문 기둥이나 대들보 혹은 천장에 붙였으며, 농가에서는 보리 뿌리를 뽑아 보고 그해 농사가 잘 될지 어떨지를 점치기도 하였다.

 

새해가 되면 입춘 절기가 대개 찾아오는데, 우리 선조들은 신춘덕담(新春德談)으로 이런 문구를 써서 벽이나 문짝, 문지방 따위에 써 붙이는 풍속이 전해져 오는데, 우리는 여기서 이상한 생각을 하기 전에 우리의 세시 풍속이며 민속 문화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다가올 일 년 동안 대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글을 벽이나 문짝, 문지방 따위에 써 붙여놓고 무사태평하기를 염원하는 우리 선조들의 순수한 마음을 읽어야 한다.

 

이런 글을 ‘입춘방’(立春榜) 또는 ‘입춘첩’(立春帖)이라고 한다. 입춘방의 문구로 가장 많이 쓰이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은 ‘운이 매우 좋음’(대길)이라는 뜻을 담아, 입춘을 맞이하여 길운을 기원한다는 뜻으로 집안뿐 아니라 나라의 길함을 비는 의미도 있다. 또 밝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라고 기원하는 글인 ‘건양다경’(建陽多慶)도 입춘방으로 자주 쓰인다.

 

이런 글은 다 ‘신춘덕담’이 되는 것이다. 이런 행위를 미신행위로 간주하는 것은 너무 삭막한 정서라고 해야 하겠다. 근래에는 우리 고유의 문화를 무속적이라거나 미신적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무정한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 같은데 우리 문화를 찾고 조상들의 지혜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이나 사회나 나라가 아무 탈 없이 잘 넘어가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일 년 중 처음 시작되는 절후인 입춘에 즉해서 ‘대길(大吉)’이라는 단어를 붙인 우리 선조들의 기발한 지혜를 생각해 보자.

 

대길은 문자 그대로 운이 매우 좋고 일이 매우 상서롭게 잘 풀리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고 꾀가 많은 사람도 세상일이란 자기 뜻대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회나 나라의 일도 마찬가지 논리이다. 빈틈없는 예측으로 정책을 수립해서 시행한다고 할지라도 계획대로만 백 프로 진행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개인이 잘되는 것은 사회가 잘되는 일이고 더 나아가서 나라가 잘 되는 일이라고 본다.

 

어제 저녁 지상파 방송 3사 초청, ‘2022년 대선후보토론‘회를 보면서 느낀 점은 대선 후보들도 하나 같이 나라가 잘되고 국민이 행복하게 잘 살게 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대권 경쟁에 뛰어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선후보들의 토론회는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후보 혼자 외쳐대는 것 보다는 상대 후보와 또는 다른 후보들과 함께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것은 국민들에게 판단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대화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건양다경’이란 말도 “맑은 날이 많고 좋은 일과 경사스런 일이 많이 생기”라는 기원을 담은 말이다. 비슷한 축원으로는 서기운집(瑞氣雲集), 만사형통(萬事亨通), 만사여의(萬事如意), 만사대길(萬事大吉),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도 같은 맥락의 뜻이라고 본다.

 

‘서기운집’은 “상서로운 기운이 구름처럼 가득 하라”는 뜻이고, ‘만사형통’은 “모든 일이 뜻대로 잘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며, ‘만사여의’나 ‘만사대길’도 같은 뜻이다. ‘소문만복래’는 “웃는 문으로는 만복이 들어온다”는 뜻이며,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은 “부모는 천 년을 장수하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라”의 의미이고, ‘수여산 부여해’는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여라”는 뜻이다.

 

세상의 일이야 어떻게 돌아가듯 상관없이 자연의 이법은 어김없이 정해진 법칙대로 운행한다. 춥고 쌀쌀했던 북풍한설도 봄기운에는 어쩌지 못한다. 답답하고 막혔던 나뿐 기운이 사라지고 맑고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따스한 춘삼월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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