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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검스님 칼럼>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호서제일선원 선원장 상명스님

평생화두 들고 선방에서 정진, 초조 달마대사 법맥이어 마음공부

불교가 인도에서 생긴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출가하여 무소유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싯다르타 고오타마가 걸었던 길을 걷는 것이다.

 

그것은 단 하나만의 이유로 세상의 모든 부귀도 영화도 다 버리고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향하여 끝없는 정진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쉬라마나’라고 불렀다.

 

유행승(遊行僧)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진리를 찾아 떠도는 구도자(求道者)이다.

 

세속적 관점에서 본다면 삶을 너무나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분들이 있기에 인류의 정신사는 발전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만을 타기 위하여 생존경쟁을 벌인다면 이 세상은 살벌한 이전투구의 싸움판이 되고야 말 것이다.

 

인도 불교는 중국에 전해지면서 중국문화와 사상과 대충돌을 겪는다. 서로 용해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신불교가 나타나는데, 이른바 선종불교(禪宗佛敎)가 그렇다.

 

 

선종의 전통을 보면, 선종의 기원은 고타마 붓다가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말없이 꽃을 꺾어 보였을 때 제자들 중 오직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고 웃음을 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와 염화시중(拈華示衆)의 일화에서 시발하고 있다.

 

중국에 처음 전해진 불교는 이론불교요 경전불교였다.   

 

불교의 본질은 명상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인데, 출가 수행자들이 이런 불교의 본분을 망각하고 따지고 분석하는 교학(敎學) 불교만이 너무 성해지자, 이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다. 이럴 때 520년경에 보리달마가 남인도에서 중국 대륙 남방으로 가서 전파한 선(禪)이 선불교에 직결되는 시초가 되었다.

 

달마대사는 달마선(達摩禪), 즉 달마 계통의 선법(禪法)의 전통의 제1대 조사로 불린다. 흔히 선종이라고 하면, 달마선을 뜻하므로 달마는 선종의 제1조인 초조가 된다.

 

'증도가(證道歌)'에 나타났듯이, 선종(달마선) 전통을 보면, 보리달마는 마하가섭에서 전승한 선종의 제28조이고 중국 대륙 선종의 제1조가 된다. 이후 중국에서는 6조 혜능대사에 이르러 선종불교가 확연하게 두각을 나타내게 되고 이런 선종불교의 체계가 확립됐다.

 

선불교는 당송(唐宋) 시대부터 형성되어 송나라 때 절정을 이루었고, 이런 선종불교의 전통과 법맥(法脈)이 해동(海東)에 전해져서 오늘날 한국불교의 주류가 되었다.

 

선종의 한국 전래는, 당나라의 서당 지장(西堂 知藏)에게서 법을 받아 784년에 신라로 귀국한 도의를 시조로 하는 가지산문(迦智山門)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남북국시대 말기와 고려 초기에 9산문이 성립되어 한창 번성했다.

 

고려 시대(918~1392)의 명종 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조계산에 수선사(修禪寺)를 세우고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설립했으나 그 뒤부터 승행(僧行)이 타락하면서 차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고려 말기에 이르러 태고 보우(1301~1382)는 중국 호주 하무산(霞霧山)의 석옥 청공(石屋淸珙)의 법을 받아 왔고 나옹 혜근(1320~1376)은 강서(江西)의 평산 처림(平山處林)의 법을 받아 와서 두 파로 갈리었다. 그러나 나옹의 법계(法系)는 얼마 안 되어 없어지고 태고의 법계만 지금까지 전래한다.

 

흔히들 한국불교를 선교밀정(禪敎密淨)의 통불교(通佛敎)라고들 말한다.

 

그렇지만 한국불교의 대표종단인 조계종은 선종(禪宗)의 맥을 계승해 가고 있으며, 선수행(禪修行)을 꾸준하게 진행해 가고 있다. 제2종단격인 태고종의 총본산 선암사도 예외 없이 선풍(禪風)을 진작하고 있다.

 

한국불교는 1950년대 불교정화운동으로 인하여 승단이 분열하는 아픔을 겪었고, 선암사는 아직도 그 중심에 서 있다. 하지만 선암사는 한국불교의 전통과 선종불교의 맥을 그대로 계승해 가고 있으며, 총림으로서의 체통을 지키고 있다

 

 

태고종 종정과 총림 방장으로 계셨던 혜초 대종사가 열반에 든 다음에는 선원장 상명선사가 참선 납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상명선사는 일찍이 백양사로 출가하여 영축산 통도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60여년을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해 오고 있다. 한때는 도심에서도 전법포교를 해왔지만 30여 년 전부터서는 조계산 선암사에 걸망을 풀고 이판(理判)을 본분종사(本分宗師)로 삼아 선암사 호서제일선원 선원장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

 

상명선사는 요즘 건강이 좀 좋지 않아서 병원엘 자주 가고 있다고 했다.

 

앉아서 정진만 하다 보니 몸체가 균형을 잃은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선문에서는 노인불수(老人不修)라고 해서 나이가 50세만 넘어도 선방에서 젊은 수좌들과 함께 정진하는 것을 경계해 왔다.

 

한국 불교에서는 1년에 두 차례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를 시행하는데, 2월 15일은 동안거 해제일이다. 

 

세계불교에서 한국불교는 독특한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정법은 변함이 없지만 시대와 중생에 따라서 전법포교방법은 달라지는 것이다. 금덩어리의 본성은 그대로일지라도 모양은 용도에 따라서 바뀌는 것이다.

 

체(體)는 그대로이지만, 상(相)은 달라지고 용(用)은 시대에 맞게 적응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전법심인(傳法心印)은 3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래세가 다하도록 그대로이지만, 불교나 승려의 모습과 작용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다.

 

이런 도리를 모르게 되면 불교는 오히려 침체하게 되고 대중으로부터 외면 받는 종교가 되어 버리고 만다.

 

선방에서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것은 불교의 근본을 지키려는 본분종사(本分宗師)의 소임이다.

 

그렇지만 행정이나 포교를 담당하는 사판(事判) 승려들은 세속의 일에도 밝아야 한다. 그래도 이판스님들도 마음 놓고 정진할 수가 있다. 또한 이판스님들이 정진 잘 하도록 외호하는 일도 사판스님들에게는 하나의 중요한 의무이다. 이런 승가의 균형이 깨어지면 서로가 힘들어진다. 상명선사는 춘삼월 선암매(仙巖梅)가 피어날 때 쯤 만나서 또 도화(道話)를 나누자고 약속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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