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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칼럼> 단풍이 손짓하는 가을 산으로 떠나자

올 여름 그 무성하던 초록나무들이 더위에 지친 나머지 가을을 맞아 노랗고 빨간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몽유병환자가 환상을 쫓으며 집을 뛰쳐나와 어디론가 사라지듯이 이 가을에 들로 산으로 정처 없이 발길 닿는 대로 한번 떠나보면 어떨까?

 

가을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이 밀려오는 계절이다. 시인 박인환은 가을에 인생의 외로움을 시로 노래하고 있다. 누구나 익히 아는 ‘목마와 숙녀’라는 시 한 구절이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우는데~~” 

 

또 ‘세월이 가면’이라는 시에서는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가을에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한다. 이 가을에 우리도 자연을 찾아 시를 읊조리는 시인이 한 번 되어보자.

지난 추석연휴를 맞아 모처럼 아내와 함께 서울근교를 찾고 연휴 마지막 날에는 여행사를 통한 여행프로그램으로 설악산 곰배령에 다녀왔다. 먼저 서울에서 지근거리인 용인의 한택식물원과 그 근처의 법륜사에 들렸다. 

 

한택식물원은 20만평의 규모에 자생식물 2,400종과 7,300종의 외래식물 등 1만여 종 총 730여만 본의 식물을 보유한 국내 최대의 종합식물원이다. 식물원에는 자연생태원, 수생식물원, 월가든 암석원, 억새원 등 자연환경에 맞게 구성한 아름다운 정원이 있고 여러 식물품종을 전시한 원추리원, 비비추원, 아이리스원 등 다양한 정원을 갖추고 있다.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즐길 수 있는 볼거리가 많아 가족과 함께 봄철에 꼭 가볼 만한 곳이다. 

 

그러나 가을에도 국화과에 속하는 갖가지 꽃들이 가을을 알려주고 탐스럽게 익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 이를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어 가을을 즐기며 산책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박각시와 수많은 벌들이 산부추, 들국화 등의 가을 야생화 위에 윙윙거리며 꿀을 빨고 있어 숨을 죽인 채 그들이 출연하는 가을전경 드라마를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계곡과 능선에 늘어선 상수리나무와 전나무 등 전통수종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숲 속의 신선하고 맑은 공기로 찌든 마음과 몸을 샤워할 수 있었다.

 

문수산 속의 법륜사는 건립된 지 오래되지 않으나 건물이 타 사찰에 비해 조형미가 걸출하다는 느낌을 준다. 사찰 건물로는 대웅전, 극락보전, 관음전, 조사전, 삼성각, 범종각, 용수각 등으로 문수산 자락에 오순도순 잘 배치되어 있다. 절의 건축자재로 사용된 목재는 백두산에서 홍송 20만 그루를 가져오고 국내의 금강송과 육송을 사용했으며 석재는 국내 화강암 중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익산 황등석을 사용했는데 대웅전의 본존불은 무게가 무려 53톤으로 전각 안에 봉안된 부처로서는 세계 최대의 석불이라고 한다. 

 

그리고 연화주와 계단, 난간 등도 석재로 만들어져 있다. 더욱이 대웅전과 범종각은 아(亞)자 복개형 건물로 지어져 있어 외관이 독특하고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대웅전은 처마 밑을 겹겹이 받치고 있는 받침대로 웅장해 보이고 단청이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으며 지붕 위에는 황금탑과 탑 위 수정구슬이 광채를 뿜어내고 있다. 범종각도 1천 2백관의 대종과 대형 법고, 목어, 운판의 사물이 갖춰져 있어 국내 사찰 중에서는 찾아보기 드물게 미학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또한 템플스태이 사찰로 알려져 있는데 프로그램으로는 당일형, 체험형, 휴식형으로 운영되고 있어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 사찰이기도 하다. 건물양식이 독창적이고 모양도 빼어나 석양 무렵에 빛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여러 방향에서 사진을 담기에 분주했다. 

 

연휴 마지막 날에는 미리 예약한 여행사의 곰배령 버스투어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춘천고속도로를 이용해 강원도 인제로 가는 동안 가을인데도 하늘은 회색빛으로 찌푸리고 있어 여행하기에는 그리 좋은 날씨가 아니었다. 곰배령은 설악산 줄기인 대청봉, 중청봉과 연결된 점봉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평평한 고개마루이다. 

 

곰배령은 멀리서 보면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깊은 산속에 마을이 있고 도로가 닦여져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주차장에서 1킬로미터 남짓 올라가면 음식점이 있는 강선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에서 5킬로미터 정도 깊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나무가 없는 고산 평원이 나타나는데 거기가 바로 곰배령이다. 

 

계곡에서의 따뜻한 기온과는 달리 곰배령에 다 달았을 때 찬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추위를 견딜 수 없게 한다. 곰배령은  봄철에 가면 갖가지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어 야생화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초가을인데도 이름 모를 야생화가 길 언저리 여기저기에 피어 있어 오르기에는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곰배령은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하루 3백명 이상 받지를 않는다고 한다. 


사전 예약을 해야만 입산이 가능하며 자연보호를 위해 산림청에서 곰배령 일대의 산을 직접 관리통제하고 있다. 곰배령을 오르내리는 등산로 주변에 소철나무를 닮은 대형고사리가 여기저기 널려져 서식하고 있고 파랗게 핀 칼용담꽃, 초롱꽃, 벌개미취 등의 야생화가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이를 카메라에 담으면서 일행을 따라 쫓느라 혼쭐이 났다. 

 

계곡 위에는 실개천이 흐르지만 계곡 밑에는 계류가 폭포수 되어 시내를 이루고 있고 주변 바위, 나무 등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등산로와 계곡에 자리한 오래된 나무와 이끼 낀 바위 그리고 각양각색의 야생화가 지천으로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품어내고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영혼과 육신의 피로를 녹여주기에 충분하다. 인류가 남긴 문화재로 유물과 유적의 보존과 관리에도 정성을 다해야겠지만 청정지역의 귀중한 산림자원도 보존과 관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설악의 단풍은 지금 한창 물들어가고 있다. 단풍은 한반도의 북에서부터 남으로 시차를 두고 내려온다. 누구든지 자신의 시간이 허락하는 때에 일정을 잡아 가을 산으로 혼자 또는 맘이 맞는 사람과 훌쩍 떠나보자. 가을이면 어디선가 모르게 밀려오는 외로움과 슬픔을 곰삭히며 가을 산에서 인생을 다시 한 번 여미어 보고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래서 가을을 노래하고 자연을 찬미하는 시인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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