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새해를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음력 을미년 원단이자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중국에서는 설을 춘절이라고 부르며 입춘이 지난 후에 한 해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날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각오로 한 해를 설계하고 부산을 떨며 한 달을 훨씬 넘겨버렸는데 아직까지 별로 이루어진 것이라곤 하나 없다. 이러한 때에 또 다른 출발점으로 음력 정월 초하루 설날을 가진다는 것은 게을러진 작심삼일의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정신 차려 한 해를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음력 정월 초하루를 한 해의 첫 날이라 하여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설이라고 부른다. 또한 이날은 근신해 경거망동을 삼가는 날이라는 뜻으로 신일(愼日)이라고 쓰기도 한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조심하고 지난해를 정리해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새 출발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설에 관련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에서는 261년에 설맞이 행사를 했고 신라에서는 651년에 왕이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는 의례가 시작됐다고 전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설을 강제적으로 쇠지 못하게 했으나 1985년에는 ‘민속의 날’로 공휴일이 됐다가 1989년에 설날이 민족명절로 다시 자리 잡게 됐다.
설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미리 마련한 새 옷인 설빔을 갈아입고 가족들과 친척들이 모여 정초의 차례를 지낸다. 차례가 끝나면 어른들께 순서대로 세배를 올리고 떡국으로 세찬을 먹는다. 아이들에게는 세뱃돈을 주며 덕담을 나누고 한 해의 축복을 빌어준다. 그리고는 이웃과 친인척을 찾아서 세배를 올린다.
설날 차례상과 세배 손님 접대를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는데 이 음식들을 세찬이라고 한다. 세찬에는 떡국, 세주, 족편, 수정과, 식혜 등이 있고 설전에 어른들께 보내는 귀한 음식이나 어른들이 아랫사람들에게 보내는 먹을 것도 세찬이라 했다. 설날에는 떡국 한 그릇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고 해서 떡국을 첨세병이라고 했다.
정월 초하루 날에는 설 차례를 지낸 뒤 자리를 정해 조부모, 부모에게 세배를 올리게 된다. 세배를 드려야 할 어른이 먼 곳에 살고 있을 때에는 정월 대보름까지 찾아가서 세배하면 예절에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
절하는 법은 손을 공손히 맞잡아야 하고 손끝이 상대를 향해서는 안 된다. 누워 있는 어른에게는 절을 해서는 안 되고 세배드릴 때는 ‘절 받으십시오’가 아니라 ‘세배 드리겠습니다’라고 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가 아니라 가볍게 고개를 숙이면 된다.
또한 세배하러 오는 어른에게는 술과 음식을, 아이들에게는 약간의 돈과 떡, 과일 등을 내놓는다.
설날 아침에 차례와 세배를 하고 성묘를 지낸 다음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여러 가지 놀이를 즐기는데 이 놀이들은 설날부터 시작해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진다.
대표적인 놀이로는 윷놀이, 널뛰기, 연 날리기, 쥐불놀이, 팽이치기, 썰매타기 등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기는 놀이로는 풍물 굿, 지신밟기, 석전, 차전놀이, 고싸움놀이, 별신 굿, 거북놀이, 북청사자놀음, 광대놀이, 달집 사르기 등이 있다. 이러한 집단놀이는 마을 사람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공동체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잔치이자 농경사회에서 두레나 품앗이 등의 협동체계를 유지하려는 숨은 목적이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설날은 흩어져 살던 혈육들이 고향을 찾아 한 자리에 모여 조상들에게 차례를 올리고 어른들에게 세배와 덕담으로 새해의 복을 비는 미풍양속의 전통문화가 숨 쉬는 대표적인 날이다. 여느 설날과 마찬가지로 올해 설날에도 고향을 찾는 수많은 귀성객들이 고속도로를 가득 채울 것이다.
오늘날 사회가 점차 인정이 메말라가지만 설날의 세시풍속이 아직도 훈훈하게 우리 사회에 면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우리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경제가 어려워 서민이 살기가 힘들고 정치가 안정되지 못해 사회가 불안하지만 그래도 고향을 찾아 반가운 부모형제를 만나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기쁜 해후를 만끽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설날을 맞아 새로운 각오를 다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