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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웃는 인생사, 노래와 삶-④ 엘레지의 여왕 가수 이미자

인생역전 시대아픔 위로하는 미스터 트롯
세대 뛰어넘는 국민가요로 시청률 높아져
광고까지 ‘러브콜’ 이젠 트로트가 삶 전부
추억속의 인물, 대한의 대표가수 이미자

[뉴시니어 = 구재숙 기자]  한국 가요사에 《미스토롯》이나 《미스터 트롯》처럼 열풍을 몰고 온 가수들이 있을까. 어디가나 트로트가 아니면 그것도 《미스터트롯》이야기가 아니면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오직 트로트가 화제다. 작년부터 《미스토롯》이 트로트의 붐을 일으키더니 올해 초에는 《미스터트롯》이 완전 점령한 듯 한 최근 가요계 판도다.

 

 

7일인 일요일엔 해인사에서 주관한 ‘한국 전쟁 70주년 추모 음악회’ 특설무대에 까지 서게 된 트로트 맨 들이다. 그야말로 인기스타가 됐다. 요즘은 트로트 테마 여행까지 생겨날 정도다.

 

송가인 고향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가하면 주말엔 수십 대의 관광버스가 물리기도 한다고 한다. “송 가인이어라-”하면 누구나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을 떠올린다. 송가인의 고향집이 있는 전남 진도군 지산면 앵무리 소앵마을은 진도 여행의 필수 코스다. 송가인 부모님들은 팬들에 커피를 대접하며 반긴다고 한다. 미스터트롯의 임영웅 고향은 포천인데, 이곳도 들썩인다고 하며, 정동원의 하동엔 ‘정동원 길’도 생겼다고 하니, 정말 우리나라 전통 트로트의 힘은 대단하다.

 

아마도 이런 트로트의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트로트 시청률도 고공행진이다. 트로트가 아니면 채널을 고정하지 않는 트로트 신드롬이 안방극장 까지 점령한 것이다.

 

울고 웃는 인생사, 노래와 삶 4탄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한국 전쟁 전후에 월북한 작가들의 작품은 발행금지 조치가 취해졌고, 작곡가·작사가나 가수의 곡 또한 많은 곡이 발행금지처분 되었다. 대표적으로 박재홍의 《유정 천리》와 같은 곡을 비롯해 많은 곡이 1988년까지 발행 되지 않았으나, 노래는 불리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나타났다.

 

 

1957년에는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대한의 대표가수 이미자가 데뷔 했으며, 1959년경부터 LP판의 시대가 시작 됐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이미자는 1957년에 방송하던 노래자랑 프로그램 KBS의 《노래의 꽃다발》에 출연해 1위를 하였으며 1958년 이미자는 HLKZ TV 방송이 개최한 아마추어 노래 콩쿠르 대회인 예능 로터리에 출전,1등으로 입상했다. 이를 계기로 당시 유명한 작곡가 나화랑에게 스카우트되어 《열아홉 순정》(반야월작사 나화랑작곡)을 발표, 가수로 공식 데뷔하였다.

 

열아홉 순정 – 이미자

 

보기만 하여도 울렁 생각만 하여도 울렁

수줍은 열아홉 살 움트는 첫사랑을 몰라 주세요

세상에 그 누구도 다 모르게

내 가슴속에만 숨어있는

음~ 내 가슴에 음~ 숨어있는

장미꽃보다 붉은 열아홉 순정이래요

 

바람이 스쳐도 울렁 버들이 피어도 울렁

수줍은 열아홉살 움트는 첫사랑을 몰라주세요

그대의 속삭임을 내 가슴에

가만히 남 몰래 담아보는

음~ 내 가슴에 음~ 담아보는

진주빛 보다 고운 열아홉 순정이래요

 

<열아홉 순정>은 1963년에 발표된 사실상 이미자의 데뷔곡이다. 하지만 이 곡은 1959년에 불렀다. 이 곡이 탄생하게 된 것은 작곡가 나화랑이 이미자를 자기 집으로 불러서 몇 곡 테스트 해본 다음, 다섯 곡을 주었는데 그중 한 곡 이라고 한다. 이 곡은 작사가 반야월이 작사 한 소재는 열아홉 그리고 순정, 작곡가 나화랑은 우리나라에서 외국 장르를 처음으로 시도한 작곡가인데 특히 서양의 맘보 리듬을 최초로 한국 가요에 도입하고 스윙과 탱고, 블루스 등의 리듬을 우리 대중가요에 접목시키기도 했다. 이 곡은 영화 <열아홉 순정>의 주제가로도 쓰였다. 이미자는 <열아홉 순정>을 부르면서 애절하고 구성진 목소리로 주목받는 가수가 됐다. 〈열아홉 순정〉 (1959년), 〈동백아가씨〉 (1964년),〈지평선은 말이 없다〉 (1966년),〈섬마을 선생님〉 (1967년),〈빙점〉 (1967년),〈서울이여 안녕〉 (1968년),〈기러기 아빠〉 (1969년),〈아씨〉 (1970년)등을 발표했다.

 

《동백아가씨》는 100만 장이 넘는 판매를 기록했고, 이미자는 인기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지만 이후 한일수교정상화의 정치적 영향을 받아 왜색풍이라는 시비에 의해 방송금지곡으로 지정되어 1987년 6월 민주항쟁이후 해금될 때까지 방송에서 접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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