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걱정 없이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인생은 어차피 걱정과 함께 살게 되어 있다. 아무 걱정 없이 세상을 사는 분들이 있다면 이런 분들은 정말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분들이다. 복잡한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중에서 도를 닦고 무심(無心)으로 살아가는 도인들은 조용히 참선을 하면서 마음을 관찰해 보니, 사람에게는 무려 108종의 번뇌가 있음을 알게 됐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런 깊이 따지고 생각하는 사색(思索)과는 거리가 멀어서 사람에게 108번뇌가 있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숨을 쉬면서 살아가는 생명체가 많다. 그 많은 생명체 중에서도 인간이란 동물은 정(情)의 동물로서 감정을 지닌 존재이다. 물론 어떤 동물에게도 어떤 현상을 보고 어떻게 느낌을 갖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이란 동물은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나 감정적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유정(有情)의 존재라고 하며, 무생물은 무정(無情)의 존재라고 한다. 그런데 유정에게는 기쁘고 즐거운 감정보다는 슬프고 괴로운 감정이 더 많은데 특히 걱정하는 감정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걱정하는 번뇌가 무려 108가지나
중생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희비가 엇갈리는 것쯤은 각오를 해야 한다. 삶이 고달프고 만만치 않다는 것은 당연한 우리 인간사의 실상(實相)이다. 부처님이 괜히 인간세계를 사바세계라고 표현한 것이 아니다. 사바세계는 고통의 세상이다. 그런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출가하여 무소유의 유랑생활을 하면서 답을 찾아 각고의 정진을 하였다. 결국 답을 얻었는데, 그것은 이 세상은 연기법(緣起法=상호의존관계)이라고 설파하면서 중도(中道)를 닦아서 자유해탈(열반)을 얻음으로써 고통을 벗어난다고 하였다. 중도(中道)란 무엇인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정도(正道)를 의미한다. 중도나 정도는 포용과 화해로 상생하면서 실현되는 것이지 서로 갈등하고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성취되지 않는다. 이번 제20대 대통령 선거전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봤다. 이렇게 우리사회가 양극화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9일 밤 개표를 지켜보면서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다가 이재명 후보가 조금 앞서가는 듯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자정을 지나면서 윤석열 후보가 상승 곡선을 타더니 끝내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양진영의 지지자들은 정말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을 것이다. 출구조
삶은 전쟁이라고 한다. 한 개인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결코 간단하고 단순하지 않다. 그러므로 어린 자식들은 부모의 보살핌이 없다면 어떻게 드넓은 세상을 헤쳐 나가겠는가. 너무나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다. 비단 어린이만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는 성인도 정부가 어느 정도 보살펴 주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으로 어떤 마인드를 갖고 있는 후보를 뽑느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개인의 역량도 필요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정부의 캐어도 너무나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대권후보에 관심을 갖고 저마다 자신이 지지하고 좋아하는 후보를 홍보하고 편을 들어주는 것 또한 민주시민의 권리이긴 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선거전쟁 중이다. 누가 이기느냐에 집중되어 있다. 대권을 잡으면 앞으로 대한민국을 어떻게 어디로 이끌어 가겠다는 것보다는 상대의 허점을 공격해서 상대후보의 지지를 하락시켜 정권을 잡아야만 한다는 선거전술이 판을 치고 있다.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대권후보의 정책이나 비전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보다는 후보나 후보 부인의 호불호(好不好)에 좌우되어 목청을 높이는 것이 선거 국면의 진풍경이다. 단일화 문제만 해도 정책연
불교가 인도에서 생긴 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출가하여 무소유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싯다르타 고오타마가 걸었던 길을 걷는 것이다. 그것은 단 하나만의 이유로 세상의 모든 부귀도 영화도 다 버리고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향하여 끝없는 정진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쉬라마나’라고 불렀다. 유행승(遊行僧)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진리를 찾아 떠도는 구도자(求道者)이다. 세속적 관점에서 본다면 삶을 너무나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분들이 있기에 인류의 정신사는 발전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만을 타기 위하여 생존경쟁을 벌인다면 이 세상은 살벌한 이전투구의 싸움판이 되고야 말 것이다. 인도 불교는 중국에 전해지면서 중국문화와 사상과 대충돌을 겪는다. 서로 용해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신불교가 나타나는데, 이른바 선종불교(禪宗佛敎)가 그렇다. 선종의 전통을 보면, 선종의 기원은 고타마 붓다가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말없이 꽃을 꺾어 보였을 때 제자들 중 오직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이심전심으로 이해하고 웃음을 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와 염화시중(拈華示衆)의 일화에서 시발하고 있다. 중국에
대개 사람들은 몸 건강을 많이 생각한다. 그렇지만 마음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마음이 편해야 몸도 편하다. 그런데 우리는 몸만을 주로 생각한다. 물론 몸도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해지는 것은 맞다. 몸이냐 마음이냐 따지기 보다는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게 사는 심신일여(心身一如)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경향이다. 그런데 말로는 쉽지만 심신의 조화란 사실상 쉬운 것이 아니다. 몸도 그렇다. 인체의 구조란 것이 그리 간단한 구성체가 아니다. 사람의 몸은 머리, 목, 몸통, 두 개의 팔과 다리로 이루어져있다. 사람의 몸 건강은 대체적으로 운동이나 식사법에 많이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유전에 의한 요소가 강하다고들 하지만 신체 타입이나 신체의 성분도는 영양에도 적잖은 영향을 받는다고 본다. 성인을 기준으로 온몸의 세포는 대략 30조 개에 달하는 세포로 이뤄져있다고 한다. 각 부분의 유기체는 필수적인 생명 기능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들에는 순환 체계, 면역 체계, 호흡 체계, 소화 체계, 배설 체계, 근육 운동, 신경 운동, 남성과 여성의 생식 등이 포함된다. 사람의 몸은 조직체와 세포로 크게 구분하는데,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다. 우주자연의 이법(理法) 앞에는 어떤 종교나 이념도 무색해진다. 계절의 변화 앞에서 누구의 조작이나 의지에 의해서 세상이 돌아간다고 한다면 설득력이 약하다. 중국 상고시대에 이미 24절후가 발견돼서 현재에까지 절기(節氣)의 법칙이 그대로 운행되고 있다. 오늘(2월 4일)은 음력으로 1월 4일이다. 24절후 가운데 입춘에 해당되는 날이다. 올해 입춘은 오전 5시 51분에 시작된다. 입춘은 문자 그대로 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심신이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모르긴 해도 며칠 전 부터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땅속에서는 이미 봄기운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입춘이 되면 동풍이 불고, 얼음이 풀리며, 동면하던 벌레들이 깨어난다고 하였다. 물론 입춘 절기가 중국의 화북 지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우리나라에서는 기상(氣象)이 다소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대체로 이때부터 봄기운이 도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북쪽 몽골 고원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매우 추울 때도 있다. 음력으로는 대개 정월이므로 새 해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이날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글을 써서 대문 기둥이나 대들보
지금은 인식이 많이 변했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새해가 되면 신년 운세를 보는 풍속이 있었다. 토정비결을 본다던지 해서 궁금한 한 해의 운수를 미리 점쳐서 한 해를 무사히 잘 넘겨야 한다는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하기야 지금은 과학의 시대이며 서양 종교의 영향으로 이 같은 풍속을 미신으로 치부해 버려서 토정비결 같은 것을 보는 사람들의 수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의 미래 예측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선진국에서도 재미로 보는 운세라고 해서 점성술이 매우 인기 있는 것으로 안다. 40여 년 전 영국에서 생활 때, 나는 불교명상을 주로 전파하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점성술을 재미로 보고 있었다. 아침 식사 시간대에 점성술사가 TV에 출연하여 잠깐이지만, 열두 별 자리를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그 날의 운세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후 프랑스에서도 파리 퐁피두센터 광장에서도 수십 명의 점성술사들이 앉아서 점을 봐주고 있었다. 나는 서양 점성술에 의하면 ‘제미니(Gemini)’ 자리인 ‘쌍아궁(雙兒宮)’에 속했는데, 생일이 5월 21일~ 6월 20일에 태어난 사람은 나이에 관계없이 쌍둥이 별자리에 속한다. 부처님의
이번 승려대회가 열리게 된 직접적인 발단은 정청래 의원의 ‘봉이 김선달’ 발언이었지만, 승려대회까지 개최하게 된 배경에는 정부의 종교편향 정책이 자리하고 있다. 불교는 한민족의 종교로서 문화재의 70%가 불교문화재일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짧은 천주교나 개신교인 기독교의 교세가 불교를 앞지르면서 종교편향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 불교계의 시각이다. 해법은 차별금지법 제정·종교편향 제도적 정비인데, 정부와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이번 승려대회를 계기로 불교계의 주장을 심각하게 수용해서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본다. 승려대회란 승단 내부의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열리는 절 집안의 대중공의(大衆公議) 제도이지만 이번에는 불교의 호교호법(護敎護法) 차원의 대회였고, 향후 불교계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이미 예고한대로 ‘불교도대회’로 이어질 것임은 명약관화하다고 내다본다.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가 1월 21일 오후 2시 5천여 승려가 조계사 경내에 운집하여 ‘정부의 종교편향정책이 심각하다’고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했다. 불교계가 제기하는 ‘불교왜곡.종교편향’은 지난해 국정 감사에서 정청래 의원이 사찰의 문화재관람료를 ‘통행세’로
선거철만 되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 무속인 논란이다. 이번에 등장하는 모(某) 법사가 무속인 인지 아니면 불교를 전법 포교하는 법사(法師) 신분인지는 좀 더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사단법인 대한불교종정협의회에 따르면 불교를 포교하는 법사라고 한다. 이 분이 ‘국민의 힘’ 정당에서 대선과 관련하여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언론이 지나치게 과대포장 내지는 희화한 느낌이 없지 않다. 이런 차제에 무속신앙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자. 무속신앙의 역사는 인류 시원과 더불어 시작된다. 간단히 무속(巫俗)이라고 하지만, 본래는 무교(巫敎) 또는 무속신앙(巫俗信仰)으로서 일종의 토착 종교의 성격을 갖고 있다. 불교나 기독교도 한국 땅에 와서는 약간의 무속적인 영향을 받아서 정착하는 과정을 밟은 것이 한국 종교사의 한 단면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샤먼’이라는 말은 퉁구스계족에서 주술사를 의미하는 사만(Saman)에서 유래한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 외에도 인도 산스크리트어 사문(沙門)을 의미하는 쉬라마나(Sramana)나 빨리어의 사마나(samana)로부터의 차용어라든지, 페르시아어의 우상을 뜻하는 셰멘(shemen), 한자에서 사당을 의미하는 사(祠)로부
요즘 세상은 자기 홍보 시대라고 해서 자신의 장점이나 주장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을 별로 흉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적극적인 성향도 결코 나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빈축을 사게 되고 실망까지 안겨줄 수도 있다. 예로부터 동양의 한자문화권이나 한국사회의 국민정서가 나를 알아주라고 강요하는 것 보다는 내가 남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에 대하여 걱정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는 이런 동양전래의 겸양정신이 무색할 정도로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거나 걱정하면서 투정을 부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 사람의 인격과 교양 수준일 수도 있겠으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신만을 알아주라는 것은 어딘지 좀 이상하고 이기주의적인 면이 없지 않다. 세상을 살면서 내 주변에 존경할만한 인격과 수양을 갖춘 분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항상 이런 분들과 만나면서 차 한 잔의 담소를 나눈다는 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보람된 인간관계가 아니랴!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매정하고 냉혹해서 누구하고 말 붙여 볼 수 없도록 인정이 메말라 가고 있어서 슬프다 못해서 고통스럽다. 더구나 요즘 같은 선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