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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명 사찰 탐방-① 조계종 제3교구 본사 설악산 '신흥사'

신흥사, 무산 대종사 자취 크게 남아 , 법검스님 “조계선풍 시원도량 조성에 최선 다하겠다”고 말해

 

[뉴시니어 = 보검스님 기자]  설악산은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일단 한번 가봐야 설악산의 진풍경을 알 수 있다. 설악산은 너무 유명해서 긴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예로부터 설악산을 북산(北山) 또는 설산(雪山)이라고도 불렀다. 설산은 인도의 히말라야와 같은 눈 산으로 여겨온 불교의 스님들은 남쪽의 지리산에서 걸망을 메고 북산(설악산)을 거쳐 금강산에 이르렀던 것이다. 조선시대 말기 까지만 해도 참선을 주로 하는 선사들은 운수납자(雲水衲子)로서 구름처럼 물처럼 이 절 저 절을 순방하면서 도를 닦아왔다. 신흥사는 금강산으로 오고가는 길목에서 잠시 쉬어가면서 꼭 들렸던 가람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신흥사는 금강산 건봉사의 수(首) 말사였지만, 1971년 본사로 승격하여 조계종 제 3교구 본사가 되어서 지금은 강원도의 2대 본사 가운데 하나로서 양양 낙산사 내설악 백담사 오세암 봉정암과 건봉사 화암사 등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 40여 년 간 설악산에 주석하면서 가람을 중수 수호 관리하고 새로운 선풍을 불러일으킨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이 바로 무산 조오현 스님이다. 무산 스님은 시조시인이기도 한 시승(詩僧)이셨다.

모두들 장수하실 걸로 생각했던 지인들에게 아쉬움을 남긴 채, 지난 2018년 5월 26일 원적에 들었다. 무산 대종사는 입적하면서 아래와 같은 열반송을 남겼다.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6월 3일 오전 10시 30분 설악산 신흥사 설법전에서 무산스님 2주기추모 다례재가 봉행됐다. 신흥사 회주 법검(우송)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조실 무산스님께서는 불보살님과 역대 조사의 가르침이 생명존중에 수렴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고 이를 문학 작품 속에도 녹여내셨다”면서 “생명존중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는 이 시기에 조실 스님의 2주기 다례재를 맞게 되니 스님의 혜안과 가르침이 더욱 그립다”고 말했다.

 

 

2주기 다례재에는 조계종 전계대화상 성우스님과 원로의원 원행스님, 전총무원장 의현스님(동화사 회주), 전 포교원장 지원스님, 화암사 회주 정휴스님, 제4교구본사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 총무원 총무부장 금곡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의정스님·영진스님 등 종단과 전국 제방의 스님들이 두루 참석했다.

 

또한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 명호근 회장, 이근배 시인, 전상아 신흥사신도회장 등 평소 인연이 깊었던 정관계 및 문학계 인사, 신흥사와 백담사 신도, 용대리 주민 등 500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해 대종사의 행적을 기렸다.

 

 

무산스님과 생전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성우 대종사는 추모사를 통해 “스님께선 남모르게 수행하셨고, 또 베풀고도 베푼 바 없이 베푸신 그 공덕이 아마 무량할 것입니다.”라고 스님의 원적 2주기를 추모했다.

 

신흥사는 652년(진덕여왕 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인데 본래 이름은 향성사였다. 그 뒤 화재를 만났고 다음에는 의상조사가 지금의 신흥사 북방 1.5 km 지점인 현 내원암 자리에 선정사를 다시 세워 불법을 전하다가 인조 20년(1642)에 화재로 없어졌다. 인조 22년(1644)에 고승 영서, 연옥, 혜원 세 스님이 현 위치에 중건하고 신흥사라 이름 붙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래 신흥사는 1912년부터 건봉사의 말사(末寺)였으나, 건봉사가 민통선 이북지역으로써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자 1971년 신흥사가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승격되었다. 보제루(유형문화재 제104호), 극락보전(유형문화재 제14호), 1799년부터 1827년 사이의 역대 신흥사 고승들의 사리탑이 모여 있는 부도군(문화재자료 제115호) 등이 있다.

 

 

설악산 신흥사에서 보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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