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니어 = 보검 스님 기자] 밀양 표충사에는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셔 놓은 사당(表忠祠)이 있다. 사명당 유정대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평양성을 탈환하고 일본에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담판을 벌여, 일본에 끌려간 피로인 3천 5백여 명을 조선으로 데리고 오는 등 임진란 때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공적으로 조정에서 이곳 표충사에 사당을 짓고 일년 두 차례 '봄'. '가을' 향사(享祀)를 모시도록 했다.
주지 법기스님은 2016년 9월 2일 부임해서 임기를 두 달여 남겨 놓고 있다. "표충사는 전국 어느 사찰보다도 남다른 의미부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호국불교의 본산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부임하자마자 사명대사를 알리고 국민모두가 올바른 국가관·호국정신을 갖게 하기 위하여 사명대사를 재조명하는 세미나와 문화 콘서트를 개최해 왔다. 지난 4년간 사찰운영의 초점을 오직 사명대사와 관련하여 호국정신 선양과 정립에 힘써왔다고 했다.
법기스님은 “많은 국민들은 임진란을 잊고 있으며, 하물며 70년 전의 한국전쟁도 먼 옛날의 역사속의 사건인양 감각이 무뎌가고 있다”고 하면서, “남북이 대치하면서 긴장이 고조되어 가는 요즘, 우리는 종교를 초월해서 사명대사의 구국의 의지와 활약을 깊이 인식하여 각오를 새롭게 할 때”라고 했다.
표충사(表忠寺)는 신라고찰(654년 창건)로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인도로부터 온 황면선사(黃面禪師)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와 삼층석탑을 세웠다. 표충사에는 국보 75호인 표충사청동함은향완이 전해 내려오고 있고, 보물 제467호의 삼층석탑이 있으며, 석등(石燈) ·표충서원(表忠書院) ·대광전(大光殿) 등의 지방문화재와 25동의 건물, 사명대사의 유물 300여 점이 보존되어 있는 전통사찰로서 중요 문화재 사찰이다.
법기스님은 지난 4년간 표충사 도량정비와 건물을 중수해 왔고, 망실될 뻔했던 토지도 환수하는 등 많은 일을 했으며, “이제 사명대사 동상을 세우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표충사는 사명대사, 서산대사, 영규대사의 영정을 봉안하여 매년 춘추로 두 차례 다례를 모신다. 법기스님은 주지로 부임 이후, 향사를 모시는데 있어서 아주 정성껏 해왔고, 문화행사로써 승화시켜서 밀양시민 뿐 아니라 전국에서 일반 국민들도 많이 참여할 수 있게 해서 호국대성인 사명대사의 구국정신을 드높이는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
또한 표충사관련 사적(事蹟)을 학술적으로 조명하여 표충사가 호국 본 찰로서의 호국도량임을 알리는 데에도 남다른 열성을 보였고, 표충사가 앞으로 호국불교의 상징적인 사찰로서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아래, 사명대사 동상 건립에 진력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이다.
주지 법기스님은 통도사 극락암 경봉 대선사의 상좌로서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안거(참선)를 했으며, 대만에 유학하여 중국어에 능통하다. 또한 세계불교승가회(본부대만) 부회장, 국제불교연맹(본부 인도) 부회장직을 맡아서 국제 불교 교류 활동에도 애쓰고 있다.
법기스님은 그동안 주지소임을 보면서도 틈나는 대로 서래각 선원에서 화두공안을 놓지 않고 정진해 왔으며, 오직 사명대사 동상 건립을 위한 발원을 해 오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사명대사 동상이 건립되면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승병대장으로서의 업적뿐 아니라, 강화사로 가서 일본 승려들에게 남긴 서첩은 물론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만나서 담판을 했던 일화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는 계획이다.
작년 향사 때는 일본 흥성사 소장 사명대사 친필유묵 4점 중 2점을 영인본으로 제작, 흥성사 주지 모치즈키 고사이 스님이 표충사 주지 법기 스님에게 전달하는 기증식을 갖기도 했다.
법기스님은 “지난 4년간은 이런 일을 하기 위한 기초를 닦는 데에 주력했고, 만일 재임한다면 사명대사 동상건립과 함께 공적을 구체화 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밀양시민과 신도들은 “법기스님이 한 임기를 더해서 표충사가 호국도량으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고 하면서 “통도사에서는 이 같은 지역정서를 잘 읽어야 한다”고 했다.
밀양 표충사에서 보검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