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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명 사찰 탐방- ⑨ 내설악 백담사와 만해 마을 심우장

만해 한용운 스님의 오도송과 무산 오현 스님의 열반송
문인 객승 가리지 않고 접견, ‘할미꽃’ 시비 밀양에 세워

 

[뉴시니어 = 보검 스님 기자]  전국 사찰에서는 지난 15일 일제히 하안거 결제가 시작됐다. 3개월간 두문불출하면서 화두  공안과 씨름하는 참선을 한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에 전해지면서 석가모니가 했던 방식대로 명상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내면 관찰법이다. 중국은 인도와는 기후가 달라서 겨울철은 매우 춥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하안거(夏安居)만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 한국은 동안거(冬安居)도 있다. 일 년에 3개월씩 두 번씩 안거를 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선사(禪師)가 많이 배출됐다. 이런 참선법이 한국에 전해져서 우리나라 불교도 선불교(禪佛敎) 전통이 주류 불교로 자리 잡게 됐다. 그렇지만 이런 참선수행 전통은 조선조 시대에는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었다.

 

 

조선말기에 경허(鏡虛) 선사라는 분이 한국불교의 선맥(禪脈)을 다시 부흥시켰다. 지금 한국불교 선(禪) 수행은 중국보다 더 활발하다. 이런 과정에서 경허 선사와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선불교가 활성화되면서, 중국 당송시대의 선풍을 한국불교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설악산은 만해 한용운 스님이 큰 획을 그었다. 만해 스님은 내설악 백담사와 오세암에 있으면서, ‘님의 침묵’이란 명시(名詩)를 남겼고, 〔조선불교유신론〕이란 불교개혁론을 발표했다. 또한 만해 한용운 스님은 시인이면서 독립 운동가이지만, 출중한 선사였다. 만해 한용운스님의 오도시(悟道詩)는 다음과 같다.

 

남아도처시고향(男兒到處是故鄕): 사나이 이르는 곳 여기 이곳 고향이니

기인장재객수중(幾人長在客愁中): 몇 사람 함께한 곳 향수에 젖어 있네

일성갈파삼천리(一聲喝破三千里): 한마디 큰소리로 삼천리를 억누르니

설리도화편편고(雪裏桃花片片孤): 눈 속에 복숭아꽃 조각조각 외롭구나

 

만해 한용운 스님의 업적을 기리고 펴는 데 있어서 무산 오현스님 만큼 만해 스님의 사상과 공적을 선양한 분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무산 오현 스님은 백담사 무금선원에 주석하면서 만해 마을 심우장에 내려와서 문인 외부 인사와 객승들까지도 가리지 않고 접견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유했다.

 

무금선원 무문관에서 수행한 다음, 발표한 시가 바로  ‘내가 나를 바라보니’이다.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가

몸을 폈다 오그렸다가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만해 스님의 시 세계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헤아린 분이 바로 무산 오현스님이다. 만해스님이 살았던 백담사에서 직접 살면서 만해를 이해하고 그의 정신과 만난 분이 바로 설악당 무산 조오현 스님이다. 백담사를 중창하고 한국불교 선풍을 다시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하는 조계종 종립기본선원을 설립하여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조계종의 눈 푸른 납자들을 양성해 내고 있다.

 

 

이른 봄 양지 밭에 나물캐던 울어머니

곱다시 다듬어도 검은 머리 희시더니

이제는 한 줌 읅으로 서러움도 잠드시고

 

이 봄 다 가도록 기다림에 지친 삶을

삼삼이 눈 감으면 떠오르는 임의 모습

그 모정 잊었던 날의 아, 허리 굽은 꽃이여.

 

하늘 아래 손을 모아 씨앗처럼 받은 가난

긴 날 배고픈들 그게 무슨 죄 입니까

적막산 돌아온 봄을 고개 숙는 할미꽃.

 

설악당 무산 대종사는 백담사 무금선원에 계시면서 조계종립 기본선원 조실과 신흥사 향성선원 조실을 겸하셨는데, 지난 2018년 홀연히 입적하셨다. 너무나 뜻밖의 입적이라서 다들 놀라서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무산 오현 대종사는 마지막 가는 길에 "천방지축(天方地軸) 기고만장(氣高萬丈)/허장성세(虛張聲勢)로 살다보니/온 몸에 털이 나고/이마에 뿔이 돋는구나/억!"

 

이라는 열반송을 남겼다.

무산 스님을 아는 분들은 만해 마을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각계각층의 무수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감동을 주고 메시지를 전한 이 시대의 참 수행자였다. 가까운 지인들은 무산 스님이 만해 마을 심우장에 주석하실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법문을 경청하고 서로 담론하고 대면의 즐거움을 누렸다. 이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까지도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얼마 전 무산스님의 4주기 다례에 모인 지인들은 만해 마을에서 추모의 시간을 갖고 못내 아쉬움의 눈시울을 붉히며 그의 마스터피스 ‘아득한 성자’를 읊조렸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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