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은 신년사를 통해 "지금 대한민국은 ‘암울한 시대’와 ‘위대한 역사’가 교차하고 있다"면서 "암울한 시대’는 소위 정치권력, 자본권력, 학벌권력 등 기득권동맹이 만들어냈다면, ‘위대한 역사’는 상식의 사회를 꿈꾸는 평범한 국민들이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제 시대교체의 때가 됐다"면서 "마지막 기회다 보낼 것은 보내고, 끝낼 것은 끝내야 한다"고 전했다.
<신년사 전문>
사람특별시 서울, 새로운 대한민국의 심장이 되자!
2016년 묵은 해가 가고,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는 흔한 새해인사가 지금처럼 특별하게 와 닿은 때는 없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암울한 시대’와 ‘위대한 역사’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암울한 시대’는 소위 정치권력, 자본권력, 학벌권력 등 기득권동맹이 만들어냈다면, ‘위대한 역사’는 상식의 사회를 꿈꾸는 평범한 국민들이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시대교체의 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보낼 것은 보내고, 끝낼 것은 끝내야 합니다.
그러나 망년(忘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송년(送年)이 되어야 합니다.
1. 이게 나라냐?
작년 11월 광화문 광장에 나온 촛불의 첫 일성이었습니다.
“상인들에게 토요일은 대목이다. 그런데 이 시국이 너무 답답하고 분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광장에 나왔다.”
은평구에서 식당일을 하신다는 50대 한 여성은 먹고 살기 바쁜 와중에도 광장에 나왔습니다.
“우리 8살 먹은 아들이 이런 나라에서 더 살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나왔다.”
시민들의 분노 앞에서 저는 서울시장으로서, 또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시민들의 함성과 열망은 뜨거웠고,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했습니다. 광장에는 대통령의 무능과 부패, 낡은 체제에 대한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고, 동시에 새로운 사회, 새로운 체제, 새로운 국가에 대한 갈망이 출렁였습니다. 국민들은 광장의 민주주의를 통하여 과거의 대한민국과 결별을 선언했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2. 이게 나라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단지 박근혜 대통령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그러나 우리가 늘 마음속으로 꿈꾸던 나라를 시작하자는 것입니다. 어려운 게 아닙니다. 멀리 있는 것도 아닙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생생하게 존재해야 합니다.
은평구 어느 골목어귀에 있을 식당에서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하면 잘 먹고 잘 사는 나라, 그의 여덟 살 아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라나는 나라가 좋은 나라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중요합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광장에 나온 궁극의 목표는 아닙니다.
각자도생, 나만 잘 사는 것도 우리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백만, 이백만 촛불들이 모여 점점 더 큰 광장을 이루고, 그토록 오래 뜨거운 것은 우리의 목표가 ‘먹고사니즘’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밥 + α (밥, 그리고 그 너머의 무엇)’, 인간다운 삶, 품격 있는 삶,
그리고 더불어 함께 잘 사는 나라가 우리의 목표입니다.
3. 우선, 기득권의 ‘보이지 않는 손’과 결별해야 합니다.
정치권력, 자본권력, 검찰권력, 학벌권력, 언론권력 등 상위 1%인 ‘보이지 않는 손’이 그동안 우리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했습니다.
그 기득권동맹을 유지하는 질서는 특권, 특혜, 정경유착, 권위주의, 부정부패였고, 시장만능주의, 토건 경제, 先성장 後복지와 같은 낡은 성장 프레임이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혼탁하게 되었고, 국민들은 불행해졌습니다.
그냥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제 낡은 체제, 낡은 질서를 깨끗이 청산해야 합니다.
우선 불평등, 불공정 문제를 해결할 주체인 정치의 구조적 모순을 개혁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낳는 구체제, 구질서를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4. 새로운 대한민국은 국민과 함께 시작해야 합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이번에 국민들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분연히 일어섰으며, 당당하게 국민권력시대를 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과의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 국민권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국민권력은 광장에서 정치, 경제, 사회 등 우리의 생활 속으로 퍼져가야 합니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남용되고 부패합니다.
권력은 분산시켜야 합니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로 권한을 이양하고, 지방정부는 시민사회와 협치해야 합니다.
‘대통령 ○○○ 정부, 또 시장 ○○○의 서울시’가 아니라 ‘시민의 정부, 협치의 정부’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선,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로 권한과 예산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서울시는 친환경무상급식, 청년수당을 추진하면서 또 메르스 사태로 중앙정부와의 갈등을 경험하며, ‘지방분권, 지방자치’의 중요성을 확인했습니다.
미래의 정부는 창조적이고 다양한 지방정부들의 연합이어야 합니다.
시민들과 더 가까이에 있는 지방정부가 시민들의 삶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지방정부는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협치해야 합니다.
서울시는 시민사회와 협치하는 ‘시민의 정부’입니다.
고객으로 불리던 ‘시민이 주인’이 되었고, 당면한 과제부터 장기적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 ‘시민이 시장’이었습니다.
‘주민참여예산제’, ‘원전하나줄이기’, ‘2030 서울플랜’, ‘2020 청년보장’과 같이 시민들은 예산의 사용을 직접 결정하기도 하고,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하고 감시하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뼈를 깎는 공직사회 혁신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서울시는 그동안 갑을관계 혁신, 하도급 혁신, 행정서비스 혁신 등 공직사회 혁신을 추진했습니다.
특히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없애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시는 김영란법 시행 2년 전부터 김영란법보다 더 엄격한 박원순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청렴하고 책임있는 공직사회 혁신을 만들기 위해 서울시 스스로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권력 감시이자 가장 건강한 민주주의는 생활정치, 즉 일상의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시민청, 서울혁신파크, 50+캠퍼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마을공동체, 학교와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이미 서울 곳곳에 시민의 삶과 정치가 만나는 ‘만남의 광장’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각자의 꿈은 달라도, 가는 길은 달라도 시민들은 대화하고 토론하며, 생활정치, 일상의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있습니다.
이렇듯 촛불들이 삶의 공간으로 스며들 때 진정한 시민혁명이 완수될 수 있습니다.
5. 새로운 대한민국은 ‘모두의 나라’여야 합니다.
1%의 기득권을 위해 99%가 불평등한 사회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경제와 복지, 성장과 분배를 구분하지 않는 ‘모두의 경제(WEconomics)’를 제안해 왔습니다. ‘모두의 경제’는 ‘시민의 경제’입니다.
‘국가와 재벌대기업’이 두 개의 앞바퀴가 되어 끌고 가는 전륜구동방식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과 복지가 함께 움직이는 4륜구동의 네 바퀴 경제입니다.
서울시가 그동안 추진했던 경제민주화, 노동존중, 일자리와 복지정책이 바로 그것입니다.
올해에도 꾸준히 좋은 일자리 만들고, 창업을 촉진하고, 골목골목의 소상인들의 삶도 알뜰하게 챙겨갈 것입니다.
더 나아가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시민들이 밥 너머의 인간다운 삶, 품격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6. 결국 사람입니다. 서울의 다른 이름은 사람특별시입니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미래를 위한 최고의 투자입니다.
서울시는 2011년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작하며 대한민국 보편복지시대를 열었고, 2020년까지 2명 중 1명은 국공립어린이집을 다니는 공격적인 목표를 추진하며 ‘국가책임보육’을 이끌고 있습니다.
국가책임보육은 미래를 잠식할 저출산 문제 뿐만 아니라 여성경력단절, 여성일자리, 성평등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공공투자입니다.
서울시는 구체제를 바꾸고 현재의 행정을 혁신함과 동시에 미래를 준비해왔습니다.
또한 올해 확대 시행될 청년수당과 생활임금제의 실험은 ‘한국형 기본수당’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이사제는 대한민국의 노동존중 시대를 열었습니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는 단 한 명의 시민의 삶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특별시의 선언이자, 대한민국 미래복지의 뉴 프론티어가 될 것입니다.
미래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열립니다.
7. 새로운 대한민국은 ‘도시의 시대’와 함께 꽃필 것입니다.
대통령은 원칙을 이야기하고, 시장은 쓰레기를 줍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시는 쓰레기를 치우고, 상수도와 하수도를 관리하고, 한강과 공원을 가꿉니다.
그리고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보도블록을 꼼꼼히 개선하고, 횡단보도를 하나라도 더 놓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쓰레기를 줄이고 순환시키며, 친환경 교통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등 서울시는 시민의 구체적 삶을 챙기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혁신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서울은 개발과 자본, 효율의 힘으로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성장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노동권, 인권, 안전, 보행권, 다양성, 환경과 생태를 희생시켰습니다.
우리는 이런 관성과 흐름에 반기를 들고, 도시 패러다임을 바꿔냈습니다.
올 봄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가는 서울역 7017, 경춘선 폐선부지, 마포 석유비축기지, 그리고 한양도성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프로젝트는 서울에 역사, 환경, 문화적 품격을 불어넣고 시민들에게 휴식을 공급하는 서울의 새로운 허파가 될 것입니다.
강북의 창동상계 신경제중심지, 홍릉바이오허브, 캠퍼스타운과 강남의 동남권 국제교류복합지구, 개포디지털혁신파크, 양재 R&D 센터는 도시재생과 미래먹거리가 결합된 서울의 새로운 심장이 될 것입니다.
8. 서울은 새로운 미래의 글로벌 스탠다드입니다.
서울의 이야기는 서울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계는 이미 지난 5년 서울의 변화와 혁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많은 지표와 수상 소식들이 서울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마이스 도시, 국제회의 개최 세계 3위, 관광객 1천 3백만 달성 등 눈부신 성과가 있었습니다.
제가 지난 11월 예테보리 지속가능발전상(Gothenburg Award for Sustainable Development)을 수상한 것은 ‘공유도시 서울’이 미래의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세계최대도시협의체 이클레이(ICLEI)의 의장국으로 세계 도시의 기후변화 대응을 주도하고, 글로벌사회적경제포럼(Global Social Economy Forum)을 창립함으로써 전 세계 도시와 국제기구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함께 ‘포용적 성장’의 챔피언 도시로서 2017년 10월 뉴욕, 파리 등 50개가 넘는 세계 도시 시장들의 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할 것입니다.
9. 모든 것이 순조롭거나 모든 사업이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옥바라지 골목 철거문제, 발달장애인 농성, 인권선언과 같은 어려움도 있었고, 때로는 각자도생의 시대, 복지사각지대의 민낯도 보여주었습니다.
구의역 사고는 뼈아픈 반성과 함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사람특별시 서울시가 가야할 길은 아직 멉니다.
새롭게 시작할 과제도 있고, 이미 추진하고 있는 많은 과제의 완성도도 높여가야 합니다.
10. 이 모든 것을 해낸 분들이 바로 우리 서울시 공무원 여러분입니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기꺼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공무원들은 시민들과 소통하고 시민사회, 전문가, 지역주민들과 협치의 장을 만들었습니다.
시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새로운 정책으로 만들고, 복잡한 갈등과 이해관계도 지혜롭게 풀어갔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서울시 공무원이야 말로 새로운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
몇 주간의 평화롭고 명예로운 촛불시민혁명, 숨은 공신도 여러분입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공무원들은 일일이 환풍구, 지하철을 점검하고 현장을 지켰고,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발로 뛰며 화장실을 개방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빛나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여러분은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민생과 안전을 흔들림 없이 챙기기 위해 25개 자치구와 함께 힘을 합쳐 시민생활과 직결된 민생대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서울시와 자치구 공무원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들과 함께라면 새로운 대한민국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11. 새로운 대한민국은 미래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새로운 미래는 꿈꾸고 실천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국가책임보육으로 가야 합니다.
대한민국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수당을 실시해야 합니다.
한국사 국정교과서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위안부 합의는 당장 폐기하고, 남북 대화를 재개하고, 개성공단을 다시 열어야 합니다.
서울시 서랍 속에 잠들어있는 ‘서울-평양 도시협력 구상’이 빛을 보는 날,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저력이 있습니다.
2017년 지금 세계는 다시 대한민국과 서울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강의 기적’을 넘어 ‘광화문의 기적’을 이어가야 합니다.
지금 광화문 광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평화롭고 성숙한 민주주의, 용기와 열정, 우애와 연대는 사람특별시를 완성시키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것입니다.
서울의 혁신과 협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되고, 세계 속에 빛나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삶 속에 빛나는 서울을 만들 것입니다.
서울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뜨거운 심장입니다.
서울시민들과 함께, 국민권력과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을 시작합시다.
감사합니다.